최근 아식스, 뉴발란스 등 트렌디한 러닝화를 판매하는 신발업체들이 잘 팔리고 있다. 기록이나 순위에 상관없이 달리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펀(fun) 러닝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젊은 층 사이에서 러닝화의 ‘근본’으로 꼽히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전통적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20~30대 사이에 퍼진 펀러닝 트렌드로 러닝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관련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운 브랜드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재유행에 오픈런까지… ‘2030 펀러닝족’ 타깃으로
3일 업계에 따르면 나이키 등 전통 러닝화 브랜드가 부진한 사이 아식스, 뉴발란스, 호카, 온러닝 등 브랜드가 득세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포착됐다. 지난해 국내 운동화 시장 규모는 약 4조원으로 이 중 러닝화가 1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러닝화가 자신을 표현하는 대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새롭고 힙한 브랜드를 찾는 수요가 크게 늘었다.
러닝화로 실적이 개선된 것은 한정판 협업 제품으로 재유행하고 있는 ‘아식스’가 대표적이다. 아식스 러닝화는 배우 고현정 등 연예인들이 일상에서 착용한 신발 등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수요가 급증했다. 지금까지도 아식스는 기능 자체는 인정받았지만 일상화에서 신기에는 디자인이나 브랜드 선호도가 나이키, 아디다스 등에 밀리는 측면이 있었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인기에 힘입어 아식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0% 늘었고 매출도 14% 증가했다.
지난달 5일 출시된 ‘뉴발란스’의 중·장거리 러닝화 ‘퓨어셀 SC 트레이너 v3’는 하루 만에 완판됐다. 당시 뉴발란스 강남점, 명동점, 홍대점 등 오프라인 매장 3곳에서는 이 러닝화를 구매하기 위해 약 500명이 ‘오픈런'(물건을 구매하려고 영업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을 했을 정도로 뜨거웠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특히 전작 대비 성능 등을 개선해 선보인 점이 통했다고 뉴발란스는 덧붙였다.
스위스 러닝화 브랜드 ‘온 러닝’과 기능성 러닝화 브랜드 ‘호카’ 등 신흥 브랜드의 성장도 눈에 띈다. 패션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상반기 중고 운동화 트렌드’에 따르면 온러닝은 전년 동기 대비 거래 건수와 검색량이 각각 약 700%, 1062% 늘었다. 같은 기간 호카드 거래 건수와 검색량이 약 37%와 57% 증가했다.
젊은 고객 유입이 활성화된 패션 플랫폼에서도 러닝화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무신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러닝화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늘었다. 29CM은 7월 한 달간 러닝화 등 여성 기능성 스포츠 의류 잡화 관련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85% 올랐다고 밝혔다.
나이키 못팔아 신흥 브랜드 앞세운 마케팅 치열
패션업계는 펀 런닝족의 수요를 겨냥하기 위해 런닝화를 시즌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체 디지털 플랫폼 에스아이빌리지는 이달 운동화 전문관을 열고 신발 카테고리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러닝 열풍을 반영해 운동화를 킬러 콘텐츠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스니커즈 전문관에서는 온러닝, 아식스 등 국내외에서 인기가 높은 총 50여개 브랜드를 엄선해 판매한다.
펀러닝 트렌드에 발맞춘 신제품 출시 움직임도 눈에 띈다. ABC마트 러닝화 전문 브랜드 사코니는 가을 시즌을 맞아 러닝 입문자를 위한 기능성 러닝화 ‘타이드2(TIDE2)’를 출시했다. 회사 관계자는 “데일리(일상)룩을 비롯해 여러 스타일링에 잘 어울리는 트렌디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라며 “추진력과 경량성을 모두 갖춘 운동화로 활용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와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체험형 콘텐츠를 늘려가는 시도도 볼 수 있다. 프로스펙스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에 마련된 ‘러너 스테이션’에서 고기능성 러닝화 ‘하이퍼래쉬’ 체험존을 지난 7월 한 달간 추가 운영했다. 또 서울시, POC주식회사와 함께 ‘러닝 클래스’ 프로그램을 진행해 직장인 등 여러 참가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회사는 전했다.
반면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은 신흥 브랜드로 수요가 분산되면서 브랜드 선호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경제전문매체 CNBC 등의 보도에 따르면 나이키의 핵심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 주력 상품인 스니커즈의 올해 3~5월 매출은 35억8700만달러로 전년도 같은 기간(38억700만달러)보다 5.8%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운동화 매출 감소폭(3.6%)보다 더 가파른 하락세다.
아디다스는 최근 광고 논란으로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보이콧’이 확산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7월 중순 1972년 뮌헨 올림픽을 주제로 런닝화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모델을 광고에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은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의 테러에 희생됐지만 아디다스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강조해온 인물을 모델로 내세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모델 기용이라는 지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