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지 않아도 알약만 삼키면 살이 빠지고 근육이 생긴다. 운동을 대체할 물질이 알약에 들어 있는 것이다. 공상과학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운동할 때 방출되는 유익한 호르몬을 기반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약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노르웨이 과기대 연구팀은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젊고 건강한 성인에게서 ‘운동성 혈장(Explas)’을 채취해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혈장에는 물과 포도당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질이 함유돼 있다. 운동 후 발생하는 호르몬은 혈장을 통해 신체 각 기관으로 방출되며, 이러한 호르몬을 포함하고 있는 혈장을 ‘운동성 혈장’이라고 한다. 운동성 혈장을 외부에서 인위적으로 투약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다. 영국 가디언은 “노르웨이에서 노화를 치료하는 방법을 바꾸는 획기적인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젊고 건강한 성인에게서 채취한 혈장을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에게 주입해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노르웨이 연구팀은 1840세의 건강한 남성에게서 운동성 혈장을 채취했다. 이렇게 얻은 혈장을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1년간 12회 투약하고 인지기능을 담당하는 해마 부피 등의 변화와 혈장 투약의 안전성 등을 추적한다. 운동성 혈장의 효과를 확인하려는 첫 번째 임상이며 임상 결과는 내년 9월 나올 예정이다.
연구팀은 이미 세포실험을 통해 운동성 혈장이 아밀로이드 베타에 노출된 신경세포의 생존율을 44% 향상시키고 뇌 위축을 절반가량 감소시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알츠하이머가 유도된 쥐에 운동성 혈장을 주입하면 해마에서 새로운 뉴런이 빠르게 형성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연구팀은 “운동에서 나타나는 호르몬 중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아직 알 수 없어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는 혈장을 주입해 잠재적으로 유익한 호르몬을 환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며 “이 방법은 운동을 할 수 없고 움직이기 어려운 환자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의 유익한 효과를 대체하는 연구는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팀은 운동할 때 방출되는 호르몬인 ‘아이리신’이 뇌에서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아이리신은 백색지방을 식욕을 억제하거나 지방을 분해하는 갈색지방으로 전환해 뇌에서 다양한 대사활동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아이리신이 운동장애를 막아 알츠하이머와 파킨슨 증상을 일으키는 ‘알파신뉴클레인’ 단백질 축적을 감소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기술로 아이리신을 더 많이 생성시키거나 약물로 호르몬을 모방해 투약할 수 있는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단거리 달리기를 할 때 생성되는 N-락토일-페닐알라닌(Lac-Phe)에 주목했다. 유산균과 아미노산 페닐알라닌이 혼합된 이 대사 성분은 격렬한 운동을 했을 때 혈류에서 뇌로 이동해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소화와 식욕을 차단해 모든 포도당이 근육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연구팀은 “올림픽과 유고비보다 부작용이 적고 복용하기 쉬운 방식의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도쿄대 의대 연구팀은 골다공증과 근육감소증을 예방하는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운동이 면역체계와 신진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새로운 방식의 항우울제 성분을 만들고 있다. 조너선 롱 스탠퍼드대 교수는 “운동약이 인간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나타나면 미래 블록버스터 신약(연매출 1조원 이상 의약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