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퇴사 결정이나 회사의 계약 해지, 정년퇴직이 아닌 AI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되는 시대를 맞았다. 과거에는 기술의 진보로 단순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고학력 사무직과 전문직, 창의성이 있어야 하는 것까지 모두 바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기존 일자리 3억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고 IMF도 “전 세계 일자리의 절반 가까이가 AI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픈 AI CEO 샘 알트먼도 창의적인 직업은 거의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AI가 더 강력해질수록 위험과 스트레스 긴장의 수위는 모두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3년 차 아나운서인 나는 며칠 전 한 기사 제목을 보고 이를 실감했다.
월급 60만원 받는 제주도청 신입 아나운서의 정체
클릭해보니 제주도청의 제주도정 뉴스 진행을 ‘인간’ 아나운서가 아닌 ‘AI’ 아나운서가 한다는 것이었고, 제작비용이 한 달에 60만원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는 동안 내 월급이 얼마인지 떠올렸고, 나도 AI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비용 절감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은 채용에서 밀려났고, 그 자리에 기술이 도입됐다.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하게 됐고, 고용은 ‘사용’이 인건비는 ‘제작비’가 됐다.
그리고 이 기사를 본 다음날 한 아나운서 아카데미 홈페이지에는 AI 아나운서 업체의 브랜드 모델, 즉 AI 아나운서를 만들기 위해 촬영을 할 아나운서를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촬영은 단 하루, 보수는 초상권 사용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영상만 접수하면 됐고 자기소개서는 필요 없었다. 인공지능으로 사람 일자리 하나가 줄었고, AI 일을 위한 일용직 하나가 생겼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이 상황에서의 걱정은 아나운서가 꿈인 취준생, 즉 사람만 할 것이다.
사실 AI가 소식을 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2020년 국내 방송사 최초로 MBN에서 김주하 AI 앵커가 등장했다. 지금까지도 AI 김주하 앵커는 1분 남짓한 주요 뉴스(저녁 7시 메인 뉴스 전에 어떤 기사가 나올지 헤드라인을 정리해 먼저 알려주는 뉴스)를 전하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뉴스 진행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 김주하 앵커가 전하고 있다.
그때의 AI 김주하 앵커와 이번 제주도청 AI 아나운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렇다. MBN은 기존 김주하 앵커가 하던 일 중 가장 짧고 쉽다고 할 수 있는 일부 업무를 AI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면, 이번 제주도청 AI 아나운서는 주 1회이긴 하지만 도정 뉴스 전체를 AI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일자리 문제부터 뉴스 진행자 역할까지 여러 측면을 생각하게 한다. 내 업무를 분담하는 것과 대체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야. 전자는 노동자, 근로자 입장에서 좋은 것이고 후자는 생계가 걸린 문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