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건 협회에서 저보다 경험, 경력, 성과가 더 좋은 분을 데려오면 자연스럽게 제 이름은 안 나올 것 같다. 그동안 내 스탠스는 똑같다. 팬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6월 30일 포항 스틸러스전 기자회견)
내가 대표팀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10년 만에 드디어 재미있는 축구도 하고 즐거운 시간도 가졌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서 나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잠을 못 자고 생각했던 것은, 나는 나를 버리기로 했다, 이제 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7월 10일 광주 FC전 기자회견)
단 열흘 만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말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지난 7일 갑자기 그가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모두가 놀란 것도 지난달 30일 기자회견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이날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대한축구협회(회장 정몽규)의 운영 방식과 대표팀 감독 물색 절차 등을 비판하며 대표팀 감독설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정훈 씨, 저는 얼마 전 끝난 유로 2024(유럽축구선수권대회)과 뜨거워지고 있는 K리그를 지켜보는 것이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표팀 감독 선임 소식을 듣고 머리에 찬물이 튀는 기분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축구의 세계적인 흐름은 ‘감독 놀이’라고 불릴 정도로 감독의 역량과 전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홍 감독의 선임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무작정 외국인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홍 감독이 2014년 독일 월드컵에 실패했다고 해서 ‘절대 불가’를 외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과정이 석연치 않아요.
정훈 씨도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가지 축구의 화제에 관심이 있겠지만요. 축구 팬으로서 카타르 월드컵 이후의 대표팀 축구는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까? 축구 전문가 100명이면 100명이 반대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대한축구협회가 선임해 우려대로 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전술이 없어서 어떤 축구를 하려고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어요. 상대적으로 약한 팀과 경기를 하면서도 첫 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가 졸전이었고, 게다가 마지막 경기인 요르단전은 유효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에는 어떤가요? 23월 임시 감독을 올림픽대표팀(U-23 축구국가대표팀)을 이끌던 황선홍 감독에게 맡기면서 황 감독은 올림픽대표팀을 잠시 비워야 했습니다. 나비효과처럼 올림픽대표팀은 4월 올림픽 예선을 겸해 열린 U-23 아시안컵에서 8강에 그쳐 36년 만에 올림픽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임시 감독 체제로 5개월을 보낸 끝에 선임한 정식 감독은 울산 HDFC를 맡았던 홍 감독이었습니다. 5개월 동안 수많은 외국인 감독 후보군과 접촉하거나 미팅을 한 것도 아무 의미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왜 홍명보일까?
특히 제시 마시(미국) 감독과 다비트 바그너(미국)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선임이 유력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시 마쉬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의 RB 라이프치히를 강팀으로 만들었고,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리즈 유나이티드 FC를 맡았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대한축구협회 측에 대표팀 선수들의 움직임 개선 방법을 3D 모델로 제시할 정도로 한국행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영국 허더즈필드 타운 AFC를 EFL 챔피언십(2부)에서 프리미어리그(1부)로 승격시켰고, 분데스리가 FC 샬케 04, EFL 챔피언십 노리치 시티의 감독을 맡은 다비트 바그너 감독도 PPT만 50장 이상을 준비해 게임 모델 등 자신의 축구 철학을 대한축구협회 측에 설명했다고 합니다. 전북 현대 박지성 테크니컬 디렉터가 지난 12일 “한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외국인 감독이 한국 대표팀의 감독이 되기를 원했던 적이 있었느냐”고 말한 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 이임생 총괄이사에 따르면 5일 밤 이 이사가 홍 감독을 찾아가 설득해 6일 오전 감독직을 수락했군요. 즉, 홍 감독은 면접도 없이 ‘특채’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애초 대한축구협회가 홍 감독에게 K리그가 열리는 도중에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하는 것도 K리그와 팬들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감독을 빼내는 것은 한 축구 클럽의 체계를 송두리째 흔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홍 감독은 단 하루 만에 마음을 바꾸고 울산을 떠났습니다.
이 이사의 말에 따르면 홍 감독의 선임은 감독의 연봉을 절약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는 외국인 감독과 한국 감독의 연봉에 차이가 있지만 이 부분도 당당하게 (협회에) 요구했다며 홍 감독의 연봉을 외국인 감독 수준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맡은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박주호 해설위원은 지난 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상에서 “(홍 감독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하나도 없다”고 폭로했습니다. 이어 (전강위 내부에서는) 국내 감독을 무조건 지지하는 위원이 많았다. 어떤 외국 감독을 제시하면 무조건 흠을 잡은 () 전체적인 흐름은 홍명보 감독을 임명하자는 식으로 흘러갔다고 덧붙였다.